정씨 대종회 송년회
정씨 대종회 송년회가 정규성 주) (소송주) 회장의 후원아래 성황리에 마쳤다.
참석자는 인천광역시 丁씨 대종회 정영진회장, 정철수 전)제주경찰청장, 정광진 한양대 법학박사 현) 경기대 교수, 정갑수 전)SH마곡단장, 정병걸 주)에이원 모터스 회장 등 그외 많은 종친회 회원들이 참석하여 2024년을 마무리 하고 2025년도에는 더욱더 발전되는 종친회가 되기를 다짐했다.
시조
나주 정씨의 시조는 고려 중엽의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정윤종(丁允宗)이다.
우리나라의 다른 성씨도 마찬가지이지만, 시조라고 해서 그 이전에 조상이 없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다만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서 후세 자손들이 그 이전 조상에 대해서는 아무런 기록이 없어 전혀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우리나라에 족보가 있기 시작한 것이 1476년, 즉 성종(成宗) 7년 《안동권씨성화보(安東權氏成化譜)》부터이니 그때부터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최고 300-400년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소상히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나주 정씨도 최초의 가첩(家牒)인 월헌첩(月軒帖)이 약 1520년, 즉 중종(中宗) 12년 전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고려 중기의 정윤종을 시조로 적어 놓은 것은 매우 신빙성 있는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권위 있는 보학자(譜學者)들의 주장도 왕실을 제외하고, 사가성(私家姓)의 시조 추적은 그 상한선을 최고(最古)로 잡더라도 고려 초기를 넘을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만약에 그 이상의 조상에 대해서 잡다한 기록을 해놓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대부분 날조된 것이라고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693~1702년경 누군가에 의해 당(唐)나라에서 재상을 지냈다는 정덕성(丁德盛)이 압해도에 유배되어 정착하고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시조가 되었다는 소설같은 이야기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일부 정씨사보(丁氏私譜)에 등재되고 확대 재편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중국이나 한국 그 어느 나라의 정사(正史)에도 일언반구의 증거도 찾아볼 수 없는 황당한 날조 행위였다는 것을 약 200年 전에 이미 해좌(海左) 정범조(丁範祖)ㆍ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 지난날의 선조(先祖) 석학(碩學)들이 너무도 분명히 변증(辨證)해 놓은 바가 있다.
우리나라의 성씨 중 조상이 중국에서 건너온 예가 없지는 않았으나 그것은 정사(正史)나 혹은 신빙성 있는 문헌에 기록이 있는 소수에 불과하고, 그밖에 중국에서 인물을 끌어와 시조로 삼은 사례는 지난날 우리나라에서 조작된 흔히 볼 수 있는 모화사상(慕華思想)의 잔재(殘滓)였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고려 시대에 이미 토성분정(土姓分定)을 받은 우리로서는 이와 같은 시조 및 조상 날조에 대해서는 일고(一考)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로지 우리 조상들의 기록을 근거로 고려 중엽의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 정윤종(丁允宗)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