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대중에게 영혼을 치유 하며 힐링을 주는 연기자로 기억되고 싶어하는 배우 이주희
최고가 되고 싶지만 한방에 뜨고 싶지는 않다.
밑바닥부터 시작해서 연기의 내공을 쌓아 어떤 역할도 다 소화 할 수 있는 실력파 배우로 승부를 걸고 싶다.
연기가 너무나 하고 싶어, 몸이 아프면 진통제를 먹으며, 동료 연기자, 스텝에게 아픔을 감추었고, 피로에 지쳐 쓰러지면 이를 악물고, 일어서고 또 일어선다는 시니어 연기자 배우 이주희를 소개한다.
배우 이주희는 원래 성격이 밝고 활달하나, 마음이 여려서 작은 꾸지람과 행동 지적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 편이다. 하지만 실제 성격은 털털하고 수더분하다.
그러나 어떤 일이 주어지면, 그 일의 완성도를 얻어내기 위해, 끝까지 파고 드는 성격이다,
현제는 천천히 연기자로서 꾸준히 인지도를 쌓고 있다.
연기를 하게 된 동기는 아빠가 가수 나훈아 남진과 같은, 대스타 가수들과 함께 다니면서 공연하는 연주자였다. 주변에서는 아빠가 시대를 잘못 태어나서 그렇지, 지금 태어났으면 KBS 악단장 정도는 되었을 것이라고들 하신다. 아빠의 연예계 활동을 보면서, 내가 만약 TV 드라마나 영화의 주인공 이었다면 더 잘 할 수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연기의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어린시절 가정이 많이 어려워 아빠, 엄마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
나에게 아빠의 기억은, 술을 너무 좋아하셔서, 가정이 많이 어려웠고, 그래서 아빠, 엄마와 함께 살지 못한것이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다.
엄마와 아빠가 이혼을 하여, 엄마와 함께 살았는데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물론 나보다 엄마가 더 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나는 부모가 이혼한 것에 대해, 한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도리어 친구들과 함께, 엄마가 하는 포장마차에 떡볶이를 먹으러 자주 찾아가, 엄마를 친구들에게 소개하곤 하였다.
외할머니도 지하상가에서 노점상을 하셨다. 그러나 나는 창피해 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학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주요 과목 학습은 물론, 예체능까지도 독학으로 해야만 했다.
그래도 공부는 물론, 각종 미술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하였다.
성인이 되었을 때 모델 생활을 하면서 향후 시니어 모델 교수가 되고 싶어서, 모델 전문대학(서울문화예술 대학)에 입학 하였고 모델학과를 졸업을 하였다.
항상 최고가 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했다. 몸이 아프면 진통제를 먹었고, 쓰러지면 남에게 티 안나게 이를 악물고,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때론, 내가 가는 이 길을 계속 가야하나, 고민도 했다.
나보다 덜 열심히 하는 동료가, 나보다 더 바쁘고. 더 잘 나갈때, 왜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나한테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 하며 갈등을 했던 시간도 잠시 있었다.
현재 나의 활동상황
처음 주인공 역을 연기한 단편 독립영화 가시나무새를 촬영 하면서, 눈물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별명을 얻은 이유는, 나의 삶이 녹아 있었던 것이, 작품의 내용과 맞아 떨어져, 눈물 연기로 뿜어져 나온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춰진것 같다.
봉사단체 고양시 ROTC 재능봉사단 소속으로, 악기 봉사, 댄스 봉사, 김장 봉사 등의 봉사도 하고있다.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가장 힘들었던 마음고생은 연기할때 감정을 잡기위해 잠시 주저하고 머뭇거릴때, 격려 보단, 너는 그래서 안된다는 마음을 할퀴는 말을 들을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엄마가 올해 76세이신데, 시장에서 옛날통닭과 순대, 곱창등의 음식을 팔고 계시다. 몸이 많이 아프신데도, 굽은 허리로, 장사를 계속 하시는 것이, 항상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 마음이 무겁다.
앞으로 계획은 제2의 인생2막 도전, 연기도전을 위한 계획이 있다.
나는 내가 하고싶은 연기를 계속 꾸준히 하고 싶다.
한방에 뜨고 싶지는 않다.
훌륭한 대선배들의 연기 내공을 배우며, 내 생애 최고의 작품을 하고싶다.
배우를 도전하는 후배에게 하고 싶은말
꿈은 이루어진다.
꿈은 이루어 내야한다.
꿈을 이루어 내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하고, 많은 경험을 해야 한다.
꼭 그렇게 하길 바란다.
끝이, 끝이 아니다, 끝까지 꿈을 쫓으면 꿈은 이룰 수 있다.
그 꿈을 반드시 이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