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월의 동백
베란다 한쪽,
동백 두 그루가 조용히 서 있다.
보이려 하지 않고
사라지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안의 시간을 견딜 뿐.
여름을 지나고,
비를 건너고,
가을을 흘려보내며
고요를 배우는 나무.
그리고
십이월.
잎 사이로
작은 붉음 하나가
천천히 숨을 튼다.
말없이 피어나는 꽃.
서두르지 않는 생명.
겨울의 공기가
꽃을 더 깊어지게 한다.
하얀 눈 위에
붉은 점 하나.
한 줄의 시처럼
그 자리에 놓인다.
떨어질 때조차
흩어지지 않는 꽃.
형태를 지키는
마지막의 침묵.
나는
그 앞에 잠시 멈춰 선다.
견딘 시간,
삶의 속도,
피어나는 순간을
조용히 바라본다.
동백은 오늘도
아무 말이 없다.
그래서 더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겨울 한가운데,
내 마음에도
붉은 꽃 하나가
천천히 열리고 있다.
에필로그
베란다 한구석,
말없이 제 시간을 견디는
두 그루의 동백이 있습니다.

햇살이 뜨거울 때도,
비가 오래 내릴 때도
그 나무는 조용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보채지 않고,
그 누구의 시선도 요구하지 않은 채
자기 안의 계절을 묵묵히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거리의 나무들이 잎을 떨구는 동안에도
동백은 초록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바라보면서도
자기 안에서 다가오는 시간을 준비하듯
아주 작은 침묵 속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이월이 문을 열던 아침,
동백의 잎 사이로
붉은 기운이 아주 조금 비쳐 나왔습니다.

성급하지 않은 생명,
서두르지 않는 꽃.
세상에 인사하듯
고개를 내민 작은 꽃망울 하나가
조용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동백은 겨울에 핍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붉음.
그 빛은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시간을 오래 머금은 마음처럼
담담하고, 그윽하고, 어딘가 깊습니다.

첫눈이 내리던 날,
눈송이가 베란다에 내려앉고
그 위로 동백의 붉은 기운이 보일 때,
저는 오래전 읽었던 시를 떠올렸습니다.
말없이 서 있으면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지켜내는 존재들.
그 조용한 힘이
동백 안에도, 우리 안에도
어디엔가 흐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동백은 꽃잎이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툭’ 하고 떨어진다고 하지요.
마지막 순간까지 모양을 잃지 않는 태도.
그 모습이 어쩐지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작은 메시지처럼 느껴졌습니다.
모두가 화려해지는 때가 아니라,
모두가 잠잠해지는 계절에 피어나는 꽃.
견뎌 온 시간 끝에서 비로소 보여주는 하나의 색.
그것이 어쩌면
우리 삶도 닮아야 할 어떤 모습인지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동백의 꽃망울은 조용히,
천천히 익어가고 있습니다.
자기 속도로, 자기 방법으로.
십이월의 오후가 베란다에 내려앉을 때,
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그 작은 생명의 호흡을 바라봅니다.
피어남과 기다림,
침묵과 흐름 사이에서
나의 마음도 천천히 제 자리를 찾아갑니다.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피어날
그 깊은 붉음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