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민 눈물 콧물 쏙 뽑은 배우
70~80년대 꼬마신랑, 미워도 다시 한 번, 고교얄개 등으로 전 국민의 눈물과 콧물을 쥐어짜며,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배우 김 정 훈의 근황을 들어 보았다.
그는 한때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1965년 대비하여 과거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TV보다는 납치당하듯이 하며 영화를 300편이 넘게 찍었다고 한다.
한 달에 4~5개를 동시에 같이 찍었단다.
한 두 시간 자고 학교 갔다가 촬영하기를 13일 동안 밤을 세워가며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 생활이 버거웠단다.
친구들은 내가 동경의 대상이며 부럽다. 했는데 그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한다.
소풍, 수학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다.
빨간 날은 무조건 촬영을 해야 했다.
이상한 소문의 진상은?
한국에서 연예계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지쳐있을 무렵인 중학교 3학년 때 홍콩 유명 영화사에 소년 범이란 영화에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화교 학교에 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스무 살 한국을 떠나 대만으로 갔단다.
이때 실종 설, 사망 설, 빛 때문에 야 밤도주 했다. 같은 이상한 소문이 많이 났다고 한다.
대만에서의 생활은?
이후 그는 대만에서 대학에 입학해 역사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 했으나 중도 포기 하고 , 컴퓨터 관련 사업으로 한국을 오가다 한국에 정착을 하려고 식당을 운영 하던 중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도 하고 첫째, 둘째 아이도 낳았다.
새집중후군 사업을 시작 하였으나 원활하게 풀리지 않는 데에 대한 스트레스로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이 왔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지금은 건강하다.
건강을 회복 후 계획은?
건강을 회복한 후 미얀마로 인생 2막 2장을 위해 또 떠났단다.
역마가 껴있는지 한 곳에 머물러 있질 못하겠다고 했다.
친구가 미얀마 군부에서 방송국장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꾼다는 정보를 주어 방송 장비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얀마로 떠났단다.
숲이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고 했다.
사람도 별로 없고, 차도 별로 없고. 너무 좋아 눌러 앉아야겠다는 생각에 와이프한테 얘기했단다. 애들 교육 문제가 걸렸는데 국제학교가 워낙 잘 돼 있어서 눌러앉기로 결정을 했단다.
큰 애 5학년, 작은 애 3학년 때 다. 지금은 다들 졸업했으며 다들 잘 있다고 한다.
미얀마로 떠난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나?
지금 그때 결정을 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윤활유사업, K-pop학원 등의 사업을 했으나 코로나 팬더믹으로 사업실패 후 바이오(배양사업)진행 중에 있으며 두 아이, 아내와 함께 미얀마로 이주한 그는 현재 잠시 한국에 와있는 상태다.
스무 살 때 연예계를 떠난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단다.
안 떠났으면 계속 연기를 했을지 안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동안 참 자유스럽게 살았다"고 털어놨다.
연기자의 길은 정리한 것인가?
아니다. 연기를 더할 생각이다.
얼마 전 저예산 영화를 촬영했는데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단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 절대 포기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 예기중인 작품도 있고, 영화 검은 베레(가제) 촬영이 예정에 있다.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제계 하려고 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기적이 그에게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무리 해본다.
누구나 그렇듯이 인생은 굴곡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 굴곡을 잘 넘어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며 인생을 뒤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