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해요” 많이 힘들고, 지칠 때 칭찬을 받으면 위로도 되고, 힘도 나고, 행복해진다. 미용학 박사, 사)크리에이티브국제美협회장, 남서울대 전)뷰티보건학과 박미정 교수가, 모델 방성미를 “칭찬해요” 모델 방성미는 단란한 가정을 꾸리다, 피치 못할 개인사정으로, 15년 전 이혼하고 두 자녀를 둔 결손가정이 되었다. 큰아이 15살, 중2학년, 작은아이는 10살, 초등학교 3년, 아이들 뒷바라지며,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앞이 캄캄했고. 뭐든지 해야만 살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삶은 고달 펐다. 서럽고, 지치고, 힘들어 할 때 마다 박미정 교수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많이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던 중 모델 방성미는 그나마 요리에 관심도 많았었고 잘 할 수 있겠다. 싶어 요리로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심하고 본격적으로 요리사업을 시작했는데 정말 운 좋게도 잘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사느라, 아이들 돌볼 겨를도 없었는데, 아이들은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참 밝게 잘 커줬다. 벌써 29살이 된 큰아이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작가로 활동하고 24살이 된 작은 아이는 성형외과 마케팅 부서에서 근무 하고 있다. 모델 방성미가 말한다. 나의 앞치마는 나의 유니폼 이었다. 가꿀 여유도 없었고, 가꿀 시간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들과 그렇게 나름 열심히 살다 보니, 어느덧 50대 중반이 되어있었다. 정신없이 살 때는 몰랐는데, 이제 한 번씩 나를 뒤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생기니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았나, 내가, 나를 보게 되었고 순간 너무도 많이 놀랐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꾸미지 않은 내 모습은 내가 젊었을 때 꿈꾸었던, 그런 아름다운 나의 인생이 산산 조각 난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대로 이렇게 나의 생을 마감할 수 없다. 이제부터 나의 제2의 인생 제2막을 준비하여 내가 원하는 삶을 살자! 고 이런, 저런 고민을 하고 있던 중 박미정 교수로부터 시니어 모델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자신이 없었다. 거부 했다. 수차례 거부를 하다. 박미정 교수가 한번 해봐, 모든 것은 내가 다 알아서 해 줄게,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안 하면 돼지라고 해서, 그래 한번 해보자, 용기를 냈고, 시키는 대로 했는데 어디서 그런 배짱이 생겼는지 전혀 떨리지도 않았고, 심지어 재미있으면서 자신감까지 생겼다. 박미정 교수는 물론, 관계자들에게 칭찬도 많이 받았다. 두 번, 세 번 무대에 오를수록 아! 이것이 내가 가야할 나의 제2의 인생 2막이구나 라고 결론을 내렸다. 원래 나는 무엇을 결정하기 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하기로 결심을 하면, 끝을 보는 성격이다. 나의 인생 2막을 결정을 했으니, 무대에 설수록 더 나은, 나의 발전하는, 당당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많은 사람들과 특히 내가 사랑하는 나의 두 딸에게 인정받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고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멋진 엄마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 열심히만 살아온 엄마가 아니라, 겉모습도 예쁜 엄마,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엄마가 되고 싶다. 늙어 보이지도 않고, 예뻐지려고 잘 관리하는 엄마, 그런 엄마가 될 것이다. 엄마이기 이전에 나도 여자다. 하고 싶은 말 이혼 가정에게, 이혼은 삶의 작은 실수다. 그래서 더욱 더 반듯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이혼했다, 해서 주눅 들거나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긍정적 마인드로 살아라! 박미정 교수는 이런 모델 방성미를 칭찬 합니다. 그렇다,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정의를 내리기가 무척 어렵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지 는, 나 스스로가 개척하고 만들어야 한다.
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광복된 것을 기념하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날. 1949년 10월 1일 제정된「국경일에 관한 법률」에 의거, 광복절이 국경일로 제정되었다. 이 날은 경축행사를 전국적으로 거행하는데 중앙경축식은 서울에서, 지방경축행사는 각 시·도 단위별로 거행한다. 이 날의 의의를 고양하고자 전국의 모든 가정은 국기를 달아 경축하며, 정부는 이 날 저녁에 각계각층의 인사와 외교사절을 초청하여 경축연회를 베푼다. 광복회원을 위한 우대조치의 하나로, 광복회원 및 동반가족에 대하여 전국의 철도·시내버스 및 수도권전철의 무임승차와 고궁 및 공원에 무료입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광복절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기념일이다. 이 날은 단순히 일본의 식만 지배에서 벗어난 것을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의 자유와 독립, 그리고 국가의 주권을 되찾은 역사적 순간을 상징한다. 일제는 한국인에 대한 강제 동원, 문화 말살 정책, 무자비한 탄압 등을 통해 한국인의 정체성과 자유를 짓밟았던 것이다. 광복절은 현재와 미래 세대에게 평화와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민족의 단결과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의 소중함을 인식하며,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얻어야 한다.
선거! 와 공천! 선거는 나라나, 지역 등을 대표하는 자를, 국민 또는 시민이, 스스로 의사표시를 하여 선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선거를 통한 권력의 정통성은 민주주의 정부에서 권력을 행사하거나 이양할 때,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국민이 국가의 주인임에도 한 개인이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당선되면,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는 것이다. 국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인이 되려면 당선인은 당선인으로써 자질과, 성품, 인격, 덕망, 품위가 있어야 한다. 주민들은 그러한 정치인이 당선되기를 희망한다. 개인의 사리사욕, 학연, 지연, 친 인척간의 곳간만을 채우려는 범죄형 집단을 이루는 그런 정치인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후보자 또한 당선이 되면, 주민들과의 약속한, 약속을 또한 반드시 지켜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일단 되고 보자”식의 자세를 가진, 자질이 없는 후보는 아예 출마를 하지 말아야한다. 아니 못 하게 해야 한다. 내가 잘못 뽑은 정치인은 나를 망치고! 내가 잘 뽑은 정치인은 나를 흥하게 할 것이다. 이제는 유권자도 깨어야 한다. 나, 나의가족, 우리를 위해서라도, 진정 내가 속해있는 내 지역에서,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할 참 일꾼을 잘 뽑아야 한다. 뽑아놓고 일 잘못 한다고, 욕하고 헐 뜻 으면 결국 또 그 만큼의 세월을 갉아먹는 꼴이 된다. 진정한 일꾼을 잘 선택하여 후회 없는 결과를 만들어야한다. 공천! 여러 사람이 합의하여, 공정하고 정당하게, 공인된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것이다. 말 그대로 공평하고 정당하게 선출해야 하는 것이다. 공인된 정당에서 선거에 출마할 당원을 공식적으로 추천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리는 이제는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일부 소수 힘 있는 정치인이 공천권을 가지고 이권을 챙기는 공천으로, 서로 싸우고 욕하는 그런 추한 모습을 이제는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 정당들도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인정받는 정당이 될 것이다. 옳고 바른, 위대한 정치인이 많이 선출되어 국민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맘 편히 사는 나라가 되어야한다.
변화의 바람에, 기적의 바람이 부나? 강화를 사랑하는 각 지역의 대표들이 8월 8일 강화 양도면 연주 홀 에서 강화 발전을 위한 발전모임 발대식을 가졌다, 지역 대표들로 하여금 자기가 속해 있는 각 지역에서, 주민과, 상가 사장님들께 강화 발전모임에 적극 동참할 것을 알리는 홍보를 할 것이란다. 발대식에 참석한 지역대표들의, 일에 대한, 당당함과 열정에 많이 놀랐다. 해일이 일면 집체만한 파도가 육지를 덮쳐 지형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변화의 바람이 불면 지역의 모든 케케묵은 찌든 때와,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완전히 바뀔 것이다. 그 선봉에선 "새한문화교육포럼 이사장“ 홍 성 욱 이학박사는 말한다. 잘못된 것은 바르게 고쳐나가야 우리가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고. 강화의 발전은 우리 모두가 바라고 갈망하는 바램이다. 그것을 알고 있는데 어찌 앞장서서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 했다. 어떠한 역경이 있더라도 반듯이 일궈낼 것이라고! 뜻있는 많은 분들이 동참해 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힘듦도 모른단다. 꼭 독립투사 같다. 지역주민들이 바라고, 갈망하는 뜻을 반듯이 이루고야 만다는. 머지않아 강화는 엄청난 발전된 모습으로 재탄생 할 것이 분명하다. 삼복더위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기, 저기, 이곳, 저곳, 구석, 구석 참 많이도 바쁘다. 그에게 심심한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그의 뜻이 꼭! 이루어져 많은 사람들에게 강화 발전의 선봉에선 작은 영웅으로 길이남길 바란다. 무엇을 해야겠다. 가 아니라 무엇을 한다. 는 참으로 큰 차이가 있다. 남을 위해 무엇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진정한 용기이며 영웅이 되기에 충분한 것 같다. 영웅이 많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 미용학은 미용에 관한 학문을 다룬다. 그중, 얼굴을 연구하여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살리거나, 외모와 이미지를 바꾸는 기술을 연구하는 학문이기도 하다. 사람을 만나야 가능한 직업인만큼 얼굴을 보면 그의 삶이 보인다는 박미정 교수의 매력적인 직업이, 많은 이들과 공감할 수 있는 테마라고 생각되어 앞으로 인물을 탐구하고 그의 삶을 메이크업하는 과정을 연재 하고자 한다. 미용학 박사, 사)크리에이티브국제美협회장, 남서울대 전)뷰티보건학과 박 미 정 교수의 명사의 인물탐구 연재 1편 자원봉사란 어원적 의미로는 자기 스스로 자기 이해를 돌보지 않고 남을 보살펴 주는 행위나 활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더더욱 내가 하는 이 행위들을 자원봉사라고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의 시간을 할애하여 남을 돌본다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시간 들을 통해 위로를 받고 힘을 얻고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베풀었다고 말하기엔 나의 기술은 아주 미비하고, 나의 시간을 썼다고 하기엔 얻는 것들이 훨씬 많다. 며칠 전, 친한 친구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고등학교 부임하고 첫 제자들이라 남다른 애정으로 30년 넘게 사제지간으로 만나온 스승의 시한부 선고 소식.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 듣고 메이크업을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1초의 망설임 없이 시간이 없어도 빼서라도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번뿐만이겠는가. 두 달 전 재활 센터에서 장애인결혼식, 50년 해로한 분들의 금혼식, 가정형편이 어려운 부부들의 무료결혼식,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어르신들의 영정사진을 위한 헤어 메이크업, 다문화가정 혹은 새터민들을 위한 미용 기술 교육, 경력단절 여성들을 위한 자기 계발 및 창업 안내 노인 건강과 정신적 우울증 완화를 위한 건강 교실, 청소년 대상 뷰티 트렌드 소개 및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를 양성하기 위한 프로젝트 등등 수없이 많이 했다. 우분투(“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_그건 내가 살아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열거할 수 없지만, 사랑이 필요한 곳이면 우리의 손길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들. 함께 뜻을 모아 마음을 모아준 회원들 덕분에 이 일들을 포기하지 않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난 ‘우분투’ 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내가 있는 이유는 당신이 있기 때문이라는 따뜻한 단어이다. 사랑이 필요하고 치료가 필요하고 일자리가 필요하고 손길이 필요한 어느 곳이든 미용을 접목한 뷰티-복지사업은 필요충분조건이 딱 맞는 사회복지 시스템이다. 우린 대상이 누구이든 장소가 어디든 중요하지 않았다. 날 아는 혹자는 얘기한다. 본인도 힘들고 어려우면서 봉사 말고 돈 벌 궁리를 하세요. 교수라는 타이틀이 밥 먹여 주는거 아니잖아요. 맞는 얘기이다. 서운하지 않다. 날 위한 소리임을 알기에. 다만,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를 뿐이라고 이해하려 한다. 돈보다는 무의식이 이끈 나의 행동이다. 보이지 않는 나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이 일을 한다. 삶을 메이크업하다. 살아가는 방법은 다양하다. 먹고 살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여 돈을 버는 방법도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돈을 투자해서 나의 시간을 버는 일이 잘 사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난 후자에 속하는 사람인 것 같다. 돈이 많아서도 돈을 잘 벌어서도 아니다. 나의 주체가 ‘돈’이 아닌 ‘시간’에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삶’이란 돈을 투자해서 나의 시간을 벌어 의미와 가치를 ‘부’라는 이름으로 나의 시간을 윤택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세상이 말하는 봉사라는 이름으로 나의 시간 들을 벌고 있고 그 시간 들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로 채우는 것. 타인의 결핍된 무언가를 위해서 내가 잘할 수 있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로 하나씩 채워가면서 내 삶을 메이크업하는 중이다. 가수 김윤아의 앨범에 수록된 글 중에 ‘중도’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나도 내 인생의 길 한가운데 서 있다. 길 가운데 절반쯤 와있는 내 삶을 손길이 필요한 그들의 시간으로 채워가고 싶다. Let’s do it!! Let’s fall in love!! 살아있는 동안 맘껏 꿈꾸고 고민하고 사랑하세요. 가수 김윤아의 외침이다.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사람들은 다 안다.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기적 같은 시간이고 신이 주신 선물 인지를. 그 귀한 시간을 내가 오늘 원하는 일을 할 수 있음이 기적이고 선물이다. Well being Well dieing 우린 잘 살아야 하고 죽음도 잘 준비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마지막’이 언제 올지 아무도 모른다. 죽음이 언제 올지 우린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인생은 미완성이라 아름다운가보다. 현재, 누구나 세상을 사는 건 완벽할 수 없다. 나의 미완성이, 나의 결핍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 세 번째 전시회를 위하여. 만 명이 모이면 만 가지의 이유와 사연이 있다. 내 전시회 전시명은 ‘삶을 메이크업 하다’이다. 이것으로 정한 이유는 만 가지 사연 만 가지 아름다움을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다. 스치는 찰나의 아름다움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고 그 순간의 역사 속에 내가 함께 하고 싶었다. 내년 초에 나의 세 번째 전시회가 열린다. 내 삶을 타인의 삶을 메이크업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함께하는 이들과 작업하는 순간,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오늘도 부지런함을 떨어본다.
기본에 충실한 연기자 길거리 캐스팅에서, 국민 최고의 청춘스타로 급부상, 안방 tv 드라마는 물론, 영화계까지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 당대 최고의 스타, 김혜선 배우의, 인생 풀 스토리를 들어 보았다. 먼저 인터뷰 내내 거침없는 솔직함과, 밝은 성격으로 인터뷰를 마치게 도움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자극적이며, 일단 시선을 끌어보자 식의 넘쳐나는 가짜뉴스에 현혹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이제는 사람을 보는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우리가 봐야 할 것은 그 사람의 과거에 대한 실수를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봐야한다. 긍정 에너지는 나의 인생을 성공 반열에 올려놓는다. 배우 김혜선의 어린 시절은? 초등학교 때 예쁜 어린이 대회 금상 수상을 하긴 하였지만 그야말로 다복한 한 가정의 생활 그대로였다. 학창시절은? 중학교 시절 길에서 우연히 CF 관계자의 눈에 들어 연예계에 입문했다. 당시 아역 스타였던 장서희, 이연수와 함께 CF를 찍던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고 했다. 엑스트라로, 유명스타들과 함께 촬영한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던 그는 정말 열심히 했고 그 모습을 눈여겨본 감독에 의해 무명에서 유명 메인 모델이 되었다. 나는 파스텔 색상을 좋아하고, 요리하기가 취미이며, 한식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해 맑은 친구들과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그런 소녀였다. 스타가 되고나서 심정은?“어렸을 때 인기도 많이 누려봤지만, 전 스타가 되겠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정상에 서려면 누군가를 밀어내야 하는데, 그게 싫었거든요. 물론 연기자로서 욕심은 있었어요. 하지만 ‘인기’때문에 사생활을 포기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죠. 그래서 한창 전성기에 결혼이라는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혼 후 생활은? 결혼은 1994년에 했다. 그때 나는 정말 ‘잘 나가는’ 연기자였다. ‘인기의 척도’라 할 수 있는 CF만 봐도 삼성전자, 화장품, 의류 등 빅 3의 전속 모델이었다. 그때는 지금과 달라서 여자 연기자가 결혼하면 자연스럽게 ‘연예계 은퇴’로 받아들이던 시절이었다. 갈림길에 섰지만 소중한 사랑을 일과 맞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유학 가는 남편을 따라 미국행 비행기를 올랐다가 1997년에 귀국했다. 귀국 후 행보는?돌아와 보니 연예계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고 했다. 아는 사람도 거의 없었고. 다시 연예계에 복귀하기까지 정말 많은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단다. 드라마에 캐스팅 됐다가 ‘낙하산 인사’에 밀려난 적도 많았고. ‘찬밥 신세’라는 게 이런 거구나 뼈저리게 실감했단다. 한 작품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그러면 분명히 다시 알아줄 것이다’라고 생각하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다독였단다. 그 선택은 옳았다. KBS 아침드라마(모정의 강)로 안방극장에 돌아온 후 KBS 우수 여자 연기상을 수상하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보상받았다고 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이겨낸 원동력은? 낙천적 성격이요! 이런 좋은 결과가 만들어 진 데는 그의 낙천적인 성격도 크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단다. 어떤 문제 상황에 처했을 때 안달복달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한다.밤새 고민한다고 해서 해결되나요? 아니잖아요. 전 어릴 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자기관리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마도 고민을 적절하게 받아들이는 성격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렇지 못했다면 지금쯤 찌들고 지친 얼굴을 하고 있겠죠. 전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얼굴을 보면, 얼굴에 다 드러난다고 생각해요. 저도 제 얼굴에 나타나는 나의모습을 책임지고 싶어요. 로맨틱한 디자인의 의상을 즐겨 입고. 셔츠보다는 블라우스를 선호하고 레이스나, 프릴 등이 달린 옷을 좋아하며. 몸의 라인에 따라 자연스럽게 피트 되는 디자인의 정장을, 무난한 것 보다는 엘레 강스하고 멋스런 쪽을 좋아한다는 그녀지만, 내면은 차돌처럼 단단하고 야무진 여자인 것 같다. 향후 나의 꿈이나 목표가 있다면? 건강이 허락하는 순간까지요! 김혜선. 그는 건강이 허락 하는 한 연기자로서 계속 남기를 꿈꾼다. ‘스타’가 아니라 ‘연기자’로 언제까지고 남고 싶은 마음, 그가 바라는 꿈이다. 인터뷰 내내 보여준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 시종일관 차분하고 공손한 말투, 그리고 타인을 먼저 배려하는 그를 보면서, 그가 왜 ‘연예계 복귀’에 성공했는지 알 것 같았다. 큰 성공이나 부를 이룬 사람보다 기본을 지키는 사람이 훨씬 더 크고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김혜선이 그랬다. 누구나 그렇듯이 인생에선, 위기도 오고, 행복도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인생길이다. 매 순간을 어떻게 대처해야 현명한지는, 본인의 몫이지만, 이글을 읽는 모든 분들께 그 대처하는 몫을 잘 대처하여 항상 좋은 결과만이 있기를 바란다.
전 국민 눈물 콧물 쏙 뽑은 배우 70~80년대 꼬마신랑, 미워도 다시 한 번, 고교얄개 등으로 전 국민의 눈물과 콧물을 쥐어짜며, 전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배우 김 정 훈의 근황을 들어 보았다. 그는 한때 그야말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였다. 나의 어린 시절은? 1965년 대비하여 과거 아역 배우로 활동했던 그는 TV보다는 납치당하듯이 하며 영화를 300편이 넘게 찍었다고 한다. 한 달에 4~5개를 동시에 같이 찍었단다. 한 두 시간 자고 학교 갔다가 촬영하기를 13일 동안 밤을 세워가며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연예계 생활이 버거웠단다. 친구들은 내가 동경의 대상이며 부럽다. 했는데 그는 친구들이 부러웠다고 한다. 소풍, 수학여행을 한 번도 못 가봤다. 빨간 날은 무조건 촬영을 해야 했다. 이상한 소문의 진상은? 한국에서 연예계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지쳐있을 무렵인 중학교 3학년 때 홍콩 유명 영화사에 소년 범이란 영화에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화교 학교에 가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스무 살 한국을 떠나 대만으로 갔단다. 이때 실종 설, 사망 설, 빛 때문에 야 밤도주 했다. 같은 이상한 소문이 많이 났다고 한다. 대만에서의 생활은? 이후 그는 대만에서 대학에 입학해 역사관련 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 했으나 중도 포기 하고 , 컴퓨터 관련 사업으로 한국을 오가다 한국에 정착을 하려고 식당을 운영 하던 중 지금의 와이프를 만나 결혼도 하고 첫째, 둘째 아이도 낳았다. 새집중후군 사업을 시작 하였으나 원활하게 풀리지 않는 데에 대한 스트레스로 42세라는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이 왔다. 다행히 건강을 회복해 지금은 건강하다. 건강을 회복 후 계획은? 건강을 회복한 후 미얀마로 인생 2막 2장을 위해 또 떠났단다. 역마가 껴있는지 한 곳에 머물러 있질 못하겠다고 했다. 친구가 미얀마 군부에서 방송국장비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꾼다는 정보를 주어 방송 장비 사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얀마로 떠났단다. 숲이 아름다운 정원 같았다고 했다. 사람도 별로 없고, 차도 별로 없고. 너무 좋아 눌러 앉아야겠다는 생각에 와이프한테 얘기했단다. 애들 교육 문제가 걸렸는데 국제학교가 워낙 잘 돼 있어서 눌러앉기로 결정을 했단다. 큰 애 5학년, 작은 애 3학년 때 다. 지금은 다들 졸업했으며 다들 잘 있다고 한다. 미얀마로 떠난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나? 지금 그때 결정을 한 것에 대해 한 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고 한다. 윤활유사업, K-pop학원 등의 사업을 했으나 코로나 팬더믹으로 사업실패 후 바이오(배양사업)진행 중에 있으며 두 아이, 아내와 함께 미얀마로 이주한 그는 현재 잠시 한국에 와있는 상태다. 스무 살 때 연예계를 떠난 것에 대해 후회하진 않는단다. 안 떠났으면 계속 연기를 했을지 안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동안 참 자유스럽게 살았다"고 털어놨다. 연기자의 길은 정리한 것인가? 아니다. 연기를 더할 생각이다. 얼마 전 저예산 영화를 촬영했는데 분위기가 너무나 좋았단다. 옛 생각이 새록새록 나는 것이 절대 포기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지금 예기중인 작품도 있고, 영화 검은 베레(가제) 촬영이 예정에 있다.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제계 하려고 한다고 한다. 다시 한 번 기적이 그에게 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글을 마무리 해본다. 누구나 그렇듯이 인생은 굴곡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이 굴곡을 잘 넘어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며 인생을 뒤 돌아본다.
변화의 바람! 변화란 단어가 너무 막연하지 않는가? 씨앗을 심는다고 모든 씨앗이 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아니다. 그 씨앗이 예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해선 많은 힘듦이 있단다. 그 힘듦을 자처하고 두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사람이 있다. 그는 바로 수 많은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 "새한문화교육포럼 이사장 홍 성 욱 이학박사이다." 많은 힘듦이 있을 것 같은데 굳이 하는 이유는? 삐뚤어진 것은 반듯하게 바로 세워서 불안정 한 것에 대한 불안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단다. 그는 오늘도 무척 바쁘다. 쉴 세 없는 전화 벨소리, 문자, 카톡 또 어디론가 바삐 떠날 채비를 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것은 시간이다. 시간은 짧고 귀한 것이다. 그 짧고, 귀하고, 소중한 시간을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정말 열심히도 살고 있다. 힘들고 지칠 때 이제 그만 해야지 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나? 전혀 없단다. 그럴 거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단다. 작은 변화가 뿌리 내려야, 불편해도 참고 살아야 하는 힘없고, 빽없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고개 들고, 어깨 펴고. 가슴 펴고 편히 살 수 있지 않겠는가? 란다. 그렇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가 않다. 정의가 살아 있어야 하고, 행정을 집행하는 행정가들의 양심이 살아 있어야 한다. 행정가들의 양심이 죽으면, 서민이 죽고, 행정가들의 양심이 살아 있으면 서민이 산다. 물론 훌륭한 행정가들도 많지만! 하루 빨리 모든 행정가들의 양심이 살아있는 그런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노원구립 민속예술단 무용 부 대상 수상을 이끌어낸 구 자 윤 노원구립민속예술단장(서울시 무형문화재 44호 삼현육각 이사) 의 대회설명이다. 노원구립 민속예술단 무용 부(부장, 이 지 연)가 7월13일 사단법인 세계예능교류협회가 주최하는 제41회 대한민국 무용경연대회 한국무용부문(일반 부) 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 대회의 대상 수상자는 국제친선교류 증진을 위해 우리의 문화와 예능 적 기량을 해외에 소개하고 더욱 발전할 수 있는 교육적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타 부문 수상자들과 함께 오는 2025년 2월 미주공연단 단원으로 미국 공연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특전이 주어진다. 노원구립 민속예술단은 2014년 노원구가 우리문화의 발전과 국악의 대중화, 전통국악 공연의 무대화를 위해 기악 부, 부장 구 동 우 성악 부, 부장 허정임 무용 부, 부장 이 지 연 풍물 부, 부장 유 동 식 네 개의 부서를 창단 하였다.우리문화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창단되어 올해로 10년. 서울시 25개 구 중 우리 전통 국악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구는 거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국악이 우리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단 당시의 사명감 우리문화는 우리가 지키겠다는 작은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는 노원구(구청장 오승록)와 노원구립 민속예술단의 활동이 꾸준히 이어가길 기대한다. 구 자 윤 단장과 같이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데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이 참 애국자가 아닌가 싶다. 계획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져 좋은 성과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국장 송 승 현
결혼부터 할까요? 아시아 숏폼드라마 시장 열기 후끈 숏폼드라마 시장에 선두 주자로 자리 매김하는 코탑미디어가 홍콩 아시아텔레비젼(ATV)과 결혼부터 할까요?를 공동 제작 크랭크인 했다. 어머니가 남겨준 집을 지키기 위해 재벌 2세와 계약 결혼을 하면서 벌어지는 로맨스 코미디 드라마다. K-pop 아이돌 그룹 펜타곤의 멤버 홍석이 주연을 맡아 전 세계 Z세대 사이에서의 선풍적 인기를 기대하고 있다. 숏폼드라마 시장은 현제 중국 시장을 필두로 전 세계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숏폼드라마가 배포되는 각국에 자국의 모국어 자막 서비스를 하는 것도 Z세대들의 인기를 끄는데 한목 하고 있다. 따라서 숏폼드라마 전문 배우들이 글로벌 인기 스타로 각광을 받으며 주목 받고 있는 상황이다. 드라마 성공을 기원하며, 꿈과 희망을 품고 있는 숏폼드라마 전문 배우들이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인기 스타로 거듭 나기를 바란다. 코탑미디어 또한 더 많은 해외 플랫폼 사업으로 숏폼드라마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되길 기원한다. 송 승 현 기자